모든 일상의 기록

고슴도치 딜레마는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저서에 등장한 것으로, 고슴도치들이 추운 날씨에 온기를 나누려고 모여들었지만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상처입지 않으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딜레마를 통해 인간의 애착 형성의 어려움을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애착의 형성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최근들어 1인 가족의 출현은 인간관계 맺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타인과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계산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슴도치 딜레마가 타인에게 다가가기 힘든 두려움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상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서 피치 못할 이유 때문에 관계를 나누지 못하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가 가져오는 이러한 딜레마는 친밀함에 대한 연구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율성에 대한 육구가 관계의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증가하는 상호의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 아무도 명쾌한 해답을 제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고슴도치 딜레마를 자신의 저서 <집단 심리학과 자아의 분석>에서 인용했습니다. 그는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결혼, 우정, 부모와 자식 관계 등 모든 종류의 인간 관계에는 혐오와 적대의 감정의 잔여물이 존재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은 억압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 일화를 인용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는 관계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밖에 없다고 보았으며, 그 이유는 나르시시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이트의 많은 저서가 친밀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어느 정도까지가 적절한 수준의 친밀함인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친밀함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인간이 어떻게 친밀함을 갈구함과 동시에 거부하는지 탐구했습니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딜레마는 대인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의 문제의식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은 평범한 어머니가 자신의 어린 딸, 혹은 아들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는 18가지의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위니캇은 자신의 아기에 대한 사랑마저도 때때로 양가적일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는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은 어머니들에 비해 아기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할 확률이 적다고 주장했습니다.


고슴도치 딜레마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성격적 접근입니다. 사람들이 외면과 같은 사회적 거절에 보이는 반응을 살펴보는 실험 연구에서 고슴도치 딜레마에 주목했습니다. 실험 결과, 만성적인 불안을 보이는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의 거절을 경험한 이후 상대적으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더 낙관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거절의 경험이 타인과 가까워지고자 하는 노력의 강화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성격 특성이 아닌 발달적 측면에서 다른 설명을 시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대인관계 갈등 상황에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관점에 의해 개인이 선호하는 해결 전략이 다양해질 수 있는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 잘 설명하는 이론 중 하나가 애착 이론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적 존재가 됩니다.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사회적으로 발달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애착 형성입니다. 생후 6개월 경이면 거의 모든 유아는 돌봐주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고, 돌봐 주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즐거워하고, 그가 떠나려고 하면 떼를 쓰는 등의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볼비는 어머니와 유아의 이러한 유대 관계를 설명하면서 애착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는 애착이 다른 사람에게 접근을 유지하려는 행동, 혹은 그 접근이 손상되었을 때 그것을 회복하려는 행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아기 및 유아기에 형성된 애착과 부모와의 유대 관계는 성인기의 애착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다음은 관계적 접근입니다. 바우마이스터와 리어리는 인간에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기본적으로 존재한다면서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정신 건강과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후에 바우마이스터는 실험을 통하여 사회적 거절의 효과를 제시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집단으로부터 거절을 경험한 사람들이 해당 상황에 대해 부정적 정서를 느끼게 되고, 이것은 높은 공격성 수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는 부정적인 정서가 공격성을 유발할 수 있다는 버코비츠의 좌절 공격성 이론에 기반한 것입니다. 실제로 트웬지의 연구에서 집단으로부터 거절을 경험한 피험자들은 통제집단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공격성을 보이고 이러한 공격성은 자신을 배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파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회적 거절에 대한 연구들에서는 다소 의외의 결과가 등장했다. 소속 욕구 충족을 방해받는 것이 정신적인 고통을 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사회적 거절이나 배척은 행동에만 영향을 미칠뿐 정서에 미치는 효과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수용된 피험자들은 경미하게나마 더 행복하고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했으나, 배척된 피험자들은 중립적인 정서 상태를 보고했습니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철학적인 논의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심리학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명확한 조작적 정의를 통해 연구의 범위를 좁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대인관계와 애착, 친밀감 등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점에 따라서 고슴도치 딜레마에 대한 설명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슴도치 딜레마를 통해 최근에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1인 가구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유하기

facebook twitter kakaoTalk kakaostory naver band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