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상의 기록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많이 아프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입니다. 무의식의 공격적인 충동이나 성적인 내용이 의식으로 올라오면 의식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누가 나를 무시하면 화가 울컥 치밀어 오르면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마침 손에 잡히는 것이 칼이라면 삽시간에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실수를 저지른 후에 큰 벌을 받아 자신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합니다. 만약 엄마가 아침에 학교에서 재학 증명서를 받아 오라고 했는데 잊어버리고 왔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내일 해도 되는 일입니다. 조금 혼나고 넘어가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며 심한 벌을 받으리라는 공포가 엄습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일상적인 일마다 죄의식을 느끼게 되면 살아가기가 힘듭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끔찍한 충동이나 죄의식을 의식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게끔 방어기제가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자아는 본능에서 솟아오르는 충동이나 초자아에서 작용하는 죄의식을 감지합니다. 뭔가 움직임이 있을 때 신호 불안이 발생하고, 불안의 신호에 따라 자아는 적당한 방어 기제를 끌어들여 충동과 죄의식을 인식하지 않게 막습니다. 그 덕분에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 쓰지 않고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프로이트의 딸로 저명한 정신분석학자가 된 안나 프로이트는 방어 기제를 더욱 깊이 연구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방어 기제는 대부분 안나 프로이트가 정리한 것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베일런트는 방어 기제에도 급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주로 사용하는 방어 기제를 조사했고, 수십 년에 걸쳐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몇 년마다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를 토대로 그는 미성숙한 방어, 신경증적 방어, 성숙한 방어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성숙한 방어는 자아의 기능이 약하거나 퇴행이 심할 때 작동하는 데 반해 성숙한 방어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어 기제입니다. 이렇듯 방어가 병리 현상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은 어떻게든 평상심을 유지하려 애써 노력하며 그 과정에서 방어 기제가 작동합니다. 다만 건강하지 못한 방어 기제를 주로 사용하는 경우 무의식의 충동이 의식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은 막을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증상으로 변형되어 표현됩니다. 갈등을 겪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미성숙하거나 신경증적인 방어 기제를 주로 동원하면, 다양한 증상으로 표현되거나 대인 관계에서 심각한 갈등이나 충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방어 기제를 잘 이해하면 상대방이 주로 어떤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지 파악하게 됩니다. 평상시에도 미숙하고 신경증적인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때에는 별문제 없이 지내다가도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힘든 상황에 처하면 미성숙한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어 기제의 사용법을 잘 파악하면 한 사람의 성격과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 방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부정입니다. 현실에서 고통을 인식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그런 사건이 없었다는 듯이 여기고 부정하려는 노력입니다. 부정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과는 다릅니다. 거짓말은 진실을 알면서도 인정하기가 두렵거나 싫어서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거나 아닌 척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부정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다음은 투사입니다. 불쾌하고 받아들이거나 감당할 수 없는 충동을 내부에 담아 두지 않고, 그것이 외부에 있는 양 인식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가장 흔하게는 어떤 일의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여기는 식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아닌 타인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주장하거나, 주변 환경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자신은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무죄라고 인식하면서 죄의식에서 자유로워집니다.


행동화입니다. 무의식적 충동이나 소망을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그와 연관된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은 마음의 충동이나 소망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불편하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억제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화가 나면 참거나 말로 표현하지 않고,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상대방을 때립니다. 그렇지만 왜 화가 났고 때리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환상이나 충동에 얽힌 감정을 의식에서 인식하지 않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성숙한 방어 기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타주의입니다. 본능적인 욕구 충족을 타인을 돕는 일로 대신하는 행동으로 이타적 포기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자신이 직접 욕구를 충족하는 대신 다른 사람이 충족할 수 있도록 도와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즐거움을 모두 희생하는 어머니라든가, 월급의 일부를 쪼개서 구호 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이타주의의 예입니다.


금욕주의입니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욕망의 충족과 쾌락을 없애고, 금욕을 통해 만족을 얻는 태도입니다. 도덕적인 면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놀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많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모두 포기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금욕주의적 행동입니다.


다음은 유머입니다. 불쾌하고 기분 나쁘거나 공격적인 충동이 생겨도 농담으로 방어하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불쾌한 감정을 견딜 수 있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승화와 억제가 있습니다. 승화는 사회적으로 용인되거나 바람직한 목적을 추구하여 무의식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행동으로 본능적인 에너지가 가로막히거나 분산되지 않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배출됩니다. 공격적인 충동이 강한 사람이 의대에 들어가서 외과의사가 되는 것도 승화의 일종으로 보고 있습니다. 억제는 의식 차원에서 느껴지는 충동과 갈등을 의식 혹은 전의식 차원에서 축소하거나 조절하는 것입니다. 불편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압도당하지 않고 최소한을 경험하는 선에서 제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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